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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30 / 2023

[변인호의 스타트업 픽] 채수응 아리아 대표 “관객은 경험을 산다”

이야기(스토리)는 소비된다. 한번 읽은 책,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봐도 결말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일회성 요소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속편 같은 후속작이나 파생작(스핀오프)으로 세계관을 넓혀야 한다. 여기에 콘텐츠 업계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상호작용하는) 콘텐츠’로 스토리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주로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갈래형이다.

 

스토리형 콘솔게임이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그 예다. 퀀틱드림이 개발해 2018년 플레이스테이션(PS)4로 출시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용자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질 뿐 아니라 주·조연 캐릭터의 생사도 결정된다. 2018년 넷플릭스가 공개한 인터랙티브 영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도 이용자 선택으로 흐름이 달라진다.

 

다만 현재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상호작용이 부족하다. 갈래형 콘텐츠는 이용자가 흐름을 선택하지만 이용자에게 다른 흐름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정해진 틀 안에서 다른 갈래가 나오는 정도다.

 

 

이에 채수응 대표는 3월 아리아스튜디오(아리아)를 설립했다. 기존의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갖고 있는 상호작용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채수응 대표는 "이용자가 콘텐츠 안에서 다른 캐릭터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상호작용이다"라며 "상호작용은 버튼을 누르는 반응형이 아니라 관객과 가상의 캐릭터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대표는 이어 "미국의 게임 디자니어 크리스 크로퍼드는 ‘진정한 상호작용은 가상의 캐릭터와 소통하며 스토리 플롯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며 크로퍼드의 제자로서 ‘진정한 상호작용’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추구

 

아리아는 갈래형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콘텐츠 제작에 도입했다. 콘텐츠를 이용하는 관객이 작품 속에서 AI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관계를 형성한다는 구상이다. AI는 스토리엔진에서 작동한다. AI 스토리엔진은 AI가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이용자의 세계관 몰입을 해치지 않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AI가 세계관·배경 설정에 맞 대화를 하도록 하는 식이다.

 

채 대표는 "콘텐츠 스토리텔링은 단순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관객은 기술이 아니라 체험을 산다"고 강조했다.

 

채 대표가 생각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그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은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을 계속 참여하게 하고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는 장치라고 강조한다.

 

그가 만든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2018년 등장한 ‘버디VR’이다. 버디VR은 쥐 캐릭터 ‘버디’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하는 가상현실(VR) 작품이다. 버디VR은 2018년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 VR 경쟁부문에 초청돼 ‘베스트 VR상’을 수상했다.

 

버디VR 개발은 상호작용에 관한 실험의 일환이다. 채 대표는 버디VR에 게임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차용해 이용자가 버디와 여러 미니게임을 즐기도록 했다.

 

채수응 대표는 "2005년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상호작용하는 ‘체험’이 그냥 보거나 듣는 것보다 오래간다는 것을 느꼈다"며 "체험을 통해 얻은 진한 감동이나 새로운 흥분같은 것으로 카메라로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8K VR을 처음 경험해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며 "기기를 착용하자마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아리아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위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솔루션도 개발 중이다. 아리아는 또 영상과 게임 환경을 오가는 시나리오와 세계관을 설계하고 제작·유통하는 한편 이용자의 재방문율도 관리한다.

 

아리아는 이러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올해 10월 프라미어사제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에도 선정됐다.

 

채 대표는 "넷플릭스가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도 상호작용에서 오는 시장 효용성이 좋기 때문이다"라며 "콘텐츠가 재방문율과 유지율을 높이는 것은 상호작용이 열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버추얼 휴먼도 처음 봤을 때는 ‘우와’ 하는데 그 이후에는 상호작용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그 상호작용을 위해 캐릭터의 호감도를 표현하는 동작을 구현하거나 대화하게 하는 소프트웨어가 저희가 만드는 AI 스토리엔진이다"라고 덧붙였다.

 

 

세계관·성격·배경 정해 AI로 상호작용

 

아리아의 AI 스토리엔진은 AI 개발사들이 연구하는 솔루션과는 결이 다르다. 아리아는 AI가 말을 알아듣는 ‘자연어 인지’나 AI가 말할 수 있게 하는 ‘발화’, ‘음성합성’ 등 기술은 외부 솔루션을 사용한다. 스토리엔진은 AI가 정해진 세계관, 각자의 배경 및 성격 설정에 맞춘 대화를 하도록 돕는다. 캐릭터의 정체성(페르소나)을 만든다.

 

아리아가 버추얼 휴먼을 제작하는 이유도 스토리엔진 때문이다. 스토리엔진은 캐릭터에 AI를 이용해 페르소나를 부여한다. 하지만 스토리엔진 자체는 얼굴이 없다. 그래서 제작한 것이 버추얼 휴먼이다. 스토리엔진은 특히 AI가 세계관 설정에 맞는 대화를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아리아는 이렇게 스토리엔진으로 페르소나를 만든 버추얼 휴먼을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에 등장시켜 이용자와 상호작용하게 한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LED 스크린으로 현실적인 배경을 출력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상물에서 관객은 직접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아리아가 올해 ‘시그래프 아시아’에서 공개한 버추얼 영화 ‘아리아시티: 프리퀄’이 그 예다.

여기에는 아리아의 버추얼 휴먼 제작과 버추얼 프로덕션 구축 노하우가 활용됐다. 또 채수응 대표가 15년쯤 컴퓨터그래픽(CG)·시각효과(VFX) 관련 영화감독으로 일한 노하우도 더해졌다.

 

아리아는 또 버추얼 휴먼 등 가상의 캐릭터가 현실의 관객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백스토리(backstory)’도 구축한다. 관객이 캐릭터 정보를 기억하듯 캐릭터도 관객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AI가 이용자가 말하고 행동하는 정보를 기억해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더 깊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과거에 무슨 경험을 했는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 등이 해당한다. 이용자가 직접 말하는 소소한 것들을 AI가 기억했다가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식이다.

 

채 대표는 "이용자가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콘텐츠에 참여해 즐길 수 있다"며 "이러한 부분을 활용해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AI 개발사와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목표는 온전한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

 

아리아의 궁극적 목표는 온전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자유도가 높은 오픈월드 게임 같은 방식이지만 게임은 아니다. 아리아는 이러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오디언스 인게이지먼트 플랫폼(AEP, Audience Engagement Platform)’으로 부른다. 출시 시점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AEP에서는 현실처럼 돌발적인 상황이 생겨도 이용자가 주변 인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구출해야 하는 시나리오에서 이용자가 가만히 있거나 구출을 거부해도 주변 인물들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다만 채 대표는 이용자의 돌발행동 전부에 AI가 모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영화·드라마·게임·확장현실(XR) 등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에 인터랙티브 콘텐츠 프로젝트 접목해보면 이러한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채 대표는 "관객이 접속 해제만 하지 않는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라며 "공간에 체류하는 시간에 맞춘 이벤트를 설정해 상호작용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동적인 관객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것도 상호작용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